김희영은 일상에서 쉽게 소모되고 버려지는 물건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값싼 일회용기나 비닐포장재 등 일상에서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가 금세 쓸모를 다하는 물건들에 주목해왔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그는, 두 가지 범주에서 “예술”의 쓸모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략 예술의 기능과 예술의 가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가의 진지한 탐구는, 사실 동시대의 젊은 작가로 살아가는 자신의 일상에서 출발한 사유일테다. 흔히 삼포세대, 혹은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지금의 청년세대들은 말 그대로 “포기”와 “가난”에 익숙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허접한 일회용 포장재처럼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삶의 가치는 어느덧 진부한 일상이 돼버려 어떤 감정의 동요도 끌어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일상이 된 가난과 포기, 작가 김희영은 예술이라는 멍에를 지고 오늘도 지루한 일상의 질서들을 반복하고 있다.
그의 첫 개인전 제목은 《일상의 질서》다. 그는 보통 배달이나 포장 음식들을 먹고 나면 쌓이는 값싼 일회용품들을 모아서 일일이 틀로 떠냈다. 우리가 경험으로 알다시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쓸모를 다한 일회용 물건들은 가차 없이 폐품으로 버려지기 일쑤다. 물건의 위계로 보자면, 그저 단순한 소임을 완수하고 내버려지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는 그렇게 순식간에 쓸모없어진 물건들을 가져다 그대로 찍어내듯 복제한 후 도자로 구웠다. 이는 그 물건들이 처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그것들을 단번에 구제하고자 하는 작가의 제스처다. 애초에 그러한 물건들은 고도의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요구되는 값싼 효율성의 가치로 무장한 채 생산된다. 하지만 기능을 다했을 때 무참하게 최소한의 가치마저 박탈당하고 마는 일회용품들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자본주의가 낳은 빈곤함을 암시한다. 김희영은 그러한 모순된 상황 속에서, 빈곤하고 쓸모없는 형태들이 현실에 대항하는 일련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6점의 작품들 중, 먼저 공간에 수직적으로 세운
를 보자. 작가는 자신이 사용했던 플라스틱 일회용 용기를 여러 번 캐스팅해서 도자로 구운 것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전시장 한 가운데 3미터에 가까운 기둥을 설치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에는 일회용 플라스틱 수저와 그릇이 사용됐다. 김희영은 일회용 수저와 그릇의 한쪽 면을 각각 본떠서 타일처럼 얇게 만들어, 전시장 한 쪽 벽에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하나의 패턴을 이루도록 설치했다. 마치 벽지 패턴처럼 정교한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는 복제된 물건들은 전시장 내에서 쉽게 작품으로 정의되지만, 실은 싸구려 일회용품들의 용도처럼 그 위계 역시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은 이 체계를 벗어나는 순간, 가차 없이 내버려질지도 모를 빈곤함을 여전히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의 한계에 맞서듯 작가는 그것을 도자로 구워냈지만, 그 행위조차 쓸모 없어 보일 정도로 비관적이다. 그는 정말 쓸모 없고 불완전한 형태들에 매달려 스스로를 비관하고 있는 것일까.
나 을 가만 보면, 그는 쓸모 없음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것도 같다. 그는 바닥과 벽에 부착할 수 있는 각각의 흰 색 타일을 만들었는데, 타일에서 전체적인 패턴을 이루는 무늬는 여러 포장재에서 발췌한 문구와 기호들이다. 그는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일상의 “쓸모없는” 문자들을 가져다가 시각적 패턴으로 다시 디자인했는데, 이로써 그 문자와 기호들은 뜻밖의 “쓸모”를 되찾게 된 셈이다. 타일과 거의 흡사한 흰 색으로 타일 위에 전사된 문자들은 비록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하나의 거대한 패턴으로 군집되어 있을 때는 아무리 흐릿한 무채색이라 할지라도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각각의 형태들은 새로운 구조 속에서 서로 연대하며 텅 빈 표면 위에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김희영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일회용품의 생산과 유통 및 소비의 메커니즘을 함축하기도 하면서 또한 그것을 강하게 전복시키기도 한다. 과 연작을 보면, 그는 하찮은 물건의 위계들을 단번에 번복시킨다. 일상의 지극히 소소한 일회용품들을 값비싼 도자로 전환시켜, 마침내 그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매우 권위적이고 상징적인 도상에 도전한다. 먹을 것 하나 없는 창백한 식탁 은 88만원 세대의 빈곤함을 고스란히 보여줌과 동시에 그러한 현실을 은폐하고 있는 일상의 강력한 통제를 비판한다. 한편 연작에서 그는 허접한 일회용기를 견고한 도자기로 완벽하게 둔갑시켜 놓았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오늘날의 세대가 고민하고 있는 예술의 기능과 가치의 문제로 직결된다. 때문에 현실의 문제로 예술적 소임을 묻는 시대에, 작가 김희영은 현실과 예술의 교차점에서 “쓸모없음”에 대한 구제에 나섰다.